마더(2009) 영화 순례기

감독: 봉준호
각본: 봉준호,박은교
출연: 김혜자, 원빈, 진구
촬영: 홍준표
편집: 문세경
음악: 이병우

괴물이 날뛰던 한강변.
말썽꾸러기 둘째 박해일이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괴물과 맞선다.
괴물을 향해 화염병을 날리는 박해일의 뒷모습.
내가 <괴물>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는 장면이다.
하필이면 그때  그 설정에서 화염병이라니.

3년이 지난 시점에서 돌이켜 보니
이 괴물과 맞서는 박해일의 장면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비롯 헛방이었지만, 폼나게 화염병을 던질 상대라도 있었던 <괴물>과 달리
봉준호 감독의 새 영화 <마더>에서는 화를 낼 상대도 없다.
화를 낼 수도 없다.

엄마는 아들을 고난으로부터 구해내려 하면 할수록
점점 예상치 못한 죄를 짓게 되며, 타락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어 간다.


'저주받은 관자놀이' 같은 유머스런 대사가 나중에 치명적인 증거로 다시 등장할 때,
김혜자와 진구라는 예상치 못했던 콤비가 사건의 진실로 한발한발 다가갈 때,
봉준호가 관객을 마음대로 쥐락 펴락 할 수 있는 감독이란 사실이 유감없이 증명된다.
2007년 이후 나왔던 어떤 스릴러 영화도 <마더>를 따라잡지 못한다.

'엄마'가 홀로 아들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분투한다는 요 컨셉에만 집중하고,
만족했으면 좋을텐데....봉준호 감독은 기어이 한 걸음 더 나가고 만다.

이 영화에서 가득 넘쳐나는 무드는 바로 '음란함'이다.
그냥 야한 게 아니라 음란하다.
'엄마'와 음란함이 합쳐지는 이 불안함.

엄마가 다 큰 아들이 노상방뇨를 할 때, 아들의 성기를 가까이서 본다.
왜 이런 장면이 필요했을까?
왜 엄마가 진구와 고등학생 애인의 정사장면을 목격하게 했을까?
비를 맞고 집에 들어 온 엄마가 아들의 방에 런닝차림으로 앉아있는 진구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장면에서 나도 따라 조마조마 했다.
혹시나 진구가 엄마를 강간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
아들을 구하기 위해 이름 난 변호사를 찾아 간 엄마는 또 거기서
변호사, 의사들을 접대하기 위해 룸쌀롱에서 접대여성과 한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

'엄마'와 대치되는 이 음란한 이미지들의 계속된 충돌.

동네 양아치 고등학생들이 소문에 "진태는 자기 엄마랑 잔다"고 이야기하자
고등학생 애인이랑 자는 '음란한'친구인 진구는 그말을 견디지 못하고
고등학생의 얼굴에 발길질을 하고야 만다.

나 역시 그만큼 견디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봉준호가 만든 이 수난극에는 그 음란함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엄마가 아들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승리하는 걸 보여주고 싶은 게 아니라
자신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 '성스러운'엄마가 타락하고, 더럽혀지고, 미쳐가는 과정을
관객들에게 지켜보게 하는데 있다.
모성에 충실하면 할 수록, 점점 모성과 멀어지는 기막힌 아이러니.
진구에게 '엄마'는 '엄마'가 아니다.
변호사에게 '엄마'는 단지 룸쌀롱의 술값을 대신 계산할 호구에 불구하다.

'아들의 발톱의 때만도 못하다'는 넝마주의 아저씨,
인간같지 않다던 진구, '떡'에 미쳐있는 고등학생. 모두다 흉물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불행히도 엄마의 아들도 다르지 않다.
다 '떡'과 '돈'을 원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자신의 아들의 무죄를 위해
무고한 사람을 신고하고, 구타하고, 살인하고, 거래하고, 은폐한다.
마을 사람들은 아정이를 도와 주기는 커녕, '쌀'과 '떡'을 교환햇다.

그래서 맞서 싸워줄 엄마가 없는 이들은 죽거나 갇히거나
아니면 진구처럼 폭력을 동원해 살아 간다.

유달리 작은 컷 하나 하나 공들여 찍어 놓은 <마더>의 화면은
배경이 된 이 중소도시를 점점 지옥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걸 지켜보는 건 너무 힘들다.

국민 엄마 김혜자가 단지 아들을 지켜내기 위해 손에 피를 묻히고 춤을 출 때,
당신도 지금 이 엄마처럼 죄짓고 살아가지 않느냐는 영화의 물음에
침 한 대 맞고 모든 걸 잊고 싶어 진다.

아마 <마더>는 한국에서 잊혀진 영화가 될 것 같다.
지독히 예민한 자가 토해낸 불경스럽고 고통스런 양심선언이다.
모두가 죄인인, 우리가 만들어 낸 세상의 추악함을
당신은..당신은 그걸 지켜 볼 용기가 있는가?

<거북이 달린다>는 <마더>의 반대말이다.
아마도 <거북이 달린다>가 사람들과 영화 재미있더라고 쉽게 이야기 될 수 있는 영화라면
<마더>는 이야기 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고통스럽게 떠올려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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